<Landing Net>  2021. 11. 02 - 11. 30  룬트갤러리 Rund Gallery 

연약한 소재로 만들어져 힘에 의해 주름이 잡힐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 이런저런 흔적들을 묻히고는 꼬깃하게 주름이 잡힌 모양으로 쓰레기통에 담겨 있는 휴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것들은 생명이 있거나 없거나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외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이렇게 어떤 생각을 환기시키는 동기가 되어주는 모양들을 모으고 조합해서 삶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각기 다른 시간의 층을 가진 소재들은 그림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자리하게 된다. 소재들은 그림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어떤 뉘앙스를 풍기게 되고, 이런 지점을 찾아 화면 위의 구조를 만드는 과정은 작가로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과정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생각들이 드로잉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캔버스 위에 그려져 완성되기 까지를 작은방과 같은 형태의 룬트 갤러리 공간에 풀어놓았다.

전시공간은 그림을 구성하는 소재가 되는 사물들이 관념적으로 처음 만나는 장소로서 기능하게 되고 드로잉, 완성된 회화 작업들과 함께 이미지가 바닥에 잠겨있는 모습으로 놓아두거나 뜰채와 같은 사물 위에 건져진 모습 등, 작가와 캔버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미지 제작 과정을 시각적으로 연출하였다. 이 전시를 통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서로 다른 생각의 구조를 상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경험을 공유하며, 각기 다른 감각으로 기억하기를 제안한다.